“피 한 방울로 20년 생체 시계 읽는다”… 인류 최초 20년간의 혈액 단백질체 변화 지도 완성

– 21종 '초안정성 단백질' 발굴… 개개인의 평생 생물학적 '유전적 지문' 정의
– 심혈관 질환·치매 증상 나타나기 수년 전 '기초 수치' 미세 균열로 발병 위험 조기 감지
– 핵심 단백질로 구성된 소형 패널 구축… 생물학적 나이 측정 및 맞춤 정밀 의료 현실화


피 한 방울로 평생 생체 시계 파악… 질병 발병 수년 전 조기 진단 길 열렸다

단 한 번의 혈액 채취만으로 개개인의 20년에 걸친 생체 시계를 정밀 추적하고, 심혈관 질환이나 치매 발병 위험을 임상 증상이 나타나기 수년 전에 미리 진단할 수 있는 인간 혈액 단백질체의 장기 동태 지도가 인류 최초로 완성되었다.

국제 공동 연구진은 20년에 걸친 대규모 추적 조사를 통해 1만 여개 이상의 혈액 단백질을 장기 분석한 결과, 평생 동안 수치가 변하지 않고 개별 유기체의 생체 균형을 유지해 주는 21종의 '초안정성 단백질 지문'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고유 수치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이탈 현상을 감지하면 심혈관 질환이나 치매 같은 중증 질환의 증상이 표면화되기 훨씬 전에 발병 가능성을 매우 높은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나아가 연구진은 정밀 검진 인프라에 바로 적용 가능한 핵심 단백질 중심의 '소형 단백질 패널'을 구축함으로써, 실제 주민등록상 나이보다 질병 위험 및 사망률과 강력하게 연결된 '진짜 생물학적 나이'를 측정하는 혁신적 기틀을 마련했다.

연구 결과는 논문명 Temporal dynamics of the human blood proteome in ageing and disease (노화 및 질병에서의 인간 혈액 단백질체 시간적 동태)로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 '네이처 헬스(Nature Health)'를 통해 8월 10일 발표되었다.

20년에 걸친 장기 추적 코호트의 임상 샘플 수집 과정부터 첨단 단백질체 분석 플랫폼, 그리고 연구의 최종 임상적 가치까지 한눈에 보여주는 전체 연구 개요도. 출처: 네이처 헬스(Nature Health)

[발견 1] 평생 변하지 않는 21종의 '초안정성 단백질'과 생물학적 유전 지문

이번 연구가 거둔 가장 독보적인 학술적 성과는 인간 혈액 단백질체 내에 일생 동안 놀라울 정도로 일정한 농도를 유지하는 '초안정성(Ultra-stable)' 단백질 집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정밀하게 규명한 점이다. 기존의 정기 건강검진 혈액 검사 항목들은 일상적 대사 변화나 식습관, 컨디션에 따라 수치가 쉽게 변동하는 한계가 있었으나, 수만 개 단백질의 평생 변동 궤적은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연구진은 성별, 연령, 계절, 일시적 외상이나 감염 등 외부 환경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수십 년 동안 독자적인 고유 기준점(Baseline)을 고수하는 핵심 단백질 21종을 찾아냈다. 마치 개개인이 지닌 고유한 지문처럼 작동하는 이 단백질들은 면역 항상성 조절, 순환기 생리 기능, 세포 손상 복구 체계 등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기전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었다. 게다가 유전체 연관 분석을 통해 이들 단백질의 기준 농도가 강한 유전적 요인에 의해 엄격하게 제어된다는 점도 함께 입증되었다.

이러한 발견은 인간의 혈액 단백질체 분석이 기존의 단기적 건강 상태 점검을 넘어, 개개인의 평생 생물학적 기본값을 정의하는 핵심 지표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발견 2] 증상 발현 수년 전 감지되는 심혈관 질환 및 치매의 경고 신호

평생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할 고유 단백질 지문 수치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균열과 이탈은 단순한 수치 변화가 아닌, 몸속 깊은 곳에서 생체 균형이 허물어지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가장 빠른 경고 신호임이 밝혀졌다.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 등 대규모 검증 코호트 데이터를 연계하여 정밀 분석한 결과, 심혈관 질환(심근경색, 뇌졸중 등)이나 알츠하이머병을 포함한 치매 환자들은 겉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거나 기존 의료 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던 시기부터 이미 고유의 초안정성 단백질 기준선에서 이탈하는 미세 변동을 보였다.

식사나 스트레스, 단기 염증 반응 등에 의해 수시로 출렁이는 '변동형 바이오마커'와 달리, 평생 일정해야 하는 '초안정 바이오마커'의 구조적 붕괴를 추적하는 이 기술은 질병이 비가역적으로 진행되기 전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는 차세대 예측 진단 프레임워크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질병 발생 위험도는 물론 향후 전반적인 장기 사망률까지 매우 정밀하게 도출할 수 있게 되었다.

[발견 3] '소형 단백질 패널'을 통한 생물학적 나이 측정 및 맞춤 정밀 의료

연구진은 장기 안정성과 예측력이 입증된 핵심 단백질들만을 엄선하여 일반 진단 현장에서 경제적이고 신속하게 적용할 수 있는 '소형 단백질 패널(Sparse Reliable Panel)'을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기존의 생물학적 나이 측정 방식이 수천 가지 유전자 발현이나 복잡한 에피제네틱 마커 분석을 필요로 하여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 대중화에 한계가 있었던 반면, 이번에 개발된 소형 패널은 소량의 혈액 분석만으로 개개인의 정확한 '생물학적 나이(Biological Age)'를 산출해 낸다. 이렇게 측정된 생물학적 나이는 달력상의 주민등록 나이보다 노화 관련 난치성 질환의 발병 가능성 및 실제 신체 기능 저하 수준을 훨씬 더 명확하게 반영했다.

연구진은 기존의 혈액 검사가 특정 시점의 신체 상태만을 정지 상태로 보여주는 '스냅샷 사진'이었다면, 이번 장기 추적 연구는 일생에 걸친 건강과 노화의 궤적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고화질 동영상'을 확보한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연구 백그라운드 및 방법론] 20년에 걸친 1만 여개 단백질의 대규모 장기 추적 연구

이러한 역사적 성과는 베이징 수도의과대학 징 리우(Jing Liu) 교수와 뤼핑 샤오(Rui-Ping Xiao) 교수 연구진이 주도하는 국제 공동 연구팀이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끈기 있게 수행해 온 대규모 장기 추적 관찰 덕분에 가능했다.

연구팀은 중장년층에서 시작해 노년층으로 이어지는 성인 1,298명(총 2,621명 규모의 확장 코호트 포함)을 대상으로 20년 동안 4차례 이상 주기적으로 혈액 샘플을 채취했다. 이후 질량분석학(Mass Spectrometry) 및 첨단 초고감도 단백질체 분석 플랫폼을 활용해 10,776개에 달하는 혈액 단백질의 시간에 따른 정량적 변동을 정밀 추적했다.

이는 단기적 혈액 반응이 아닌 인간 생애 주기에 따른 혈액 단백질체의 장기 동태 지도를 인류 역사상 최초로 완벽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의학계 및 생명과학계 전체에 거대한 이정표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향후 전망] '예방 의학' 시대로의 패러다임 대전환

이번 연구 성과는 향후 의료 현장의 패러다임을 '증상 치료(Reactive Medicine)'에서 '사전 예방(Proactive Medicine)'으로 근본적으로 전환할 핵심 열쇠가 될 전망이다.

매년 혹은 수년 단위의 정기 검진 시 소형 단백질 패널을 활용해 자신의 '단백질 고유 지문'을 등록해 두면, 특정 단백질 수치가 균형점에서 벗어나는 시점을 즉각 감지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치매나 심혈관 질환에 대한 생활 습관 개선, 약물 처방, 영양적 Intervention 등을 발병 수년 전부터 선제적으로 시행함으로써, 건강한 수명(Healthspan)을 극적으로 연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들풀 기자 it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