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햇의 'CentOS 지원 중단'과 RHEL 9 'x86-64-v2' CPU 강제 정책이 결정타
"47% 제어 장비 못 쓰게 돼"… 기업 주도 OS 리스크 피하고 오픈소스 자율성 확보

[IT News]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입자물리학 연구소인 유럽입자기물리학연구소(CERN)가 지난 20년간 유지해 온 레드햇(Red Hat) 계열 리눅스 중심의 컴퓨팅 인프라를 전면 재편한다.
CERN은 입자 가속기를 중앙 제어하는 2,200여 대 이상의 산업용 컴퓨터 및 임베디드 제어 시스템 OS를 레드햇 계열에서 커뮤니티 기반 오픈소스 OS인 '데비안(Debian)'으로 전환하는 대형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 같은 소식은 지난 8월 29일부터 30일까지 스위스 빈터투어에서 열린 데비안 연례 컨퍼런스 ‘MiniDebConf Winterthur 2026’에서 CERN 소속 엔지니어 페데리코 바가(Federico Vaga)와 니코스 치피나키스(Nikos Tsipinakis)의 발표를 통해 공식 확인되었다.
20년 '레드햇 단짝' CERN, 왜 이탈을 결심했나
CERN은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인 거대하드론충돌기(LHC)를 비롯해 초고성능 과학 장비를 운영하는 기관으로, 컴퓨팅 환경의 안정성과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둔다.
CERN은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 페르미국립속도가속기연구소(Fermilab)와 함께 레드햇 엔터프라이즈 리눅스(RHEL) 기반의 자체 재배포판인 '사이언티픽 리눅스(Scientific Linux)'를 직접 제작해 사용해 왔다.
이후 자체 배포판 유지보수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레드햇이 공식 지원하던 무료 호환 OS인 'CentOS'로 이주하여 인프라를 안정적으로 운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레드햇의 기업 전략 변화가 CERN의 인프라 정책에 연속적으로 타격을 입혔다.
2020년 CentOS 8을 출시 불과 1년 만에 조기 단종하고, 상류(Upstream) 테스트용 롤링 릴리스 배포판인 'CentOS Stream'으로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10년에서 15년 단위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운영 계획을 수립하는 CERN의 입장에서는 가동 중인 가속기 인프라에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높은 롤링 릴리스 체제를 적용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3년 레드햇이 RHEL 소스 코드에 대한 공공 접근까지 제한하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이 조치는 록키 리눅스(Rocky Linux)나 알마 리눅스(Alma Linux) 같은 RHEL 호환 무료 배포판 생태계 전체의 불확실성을 증대시켰으며, 결과적으로 CERN이 특정 기업의 독점적 정책 변화로부터 자유로운 순수 커뮤니티 기반 OS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결정적 한 방, 'x86-64-v2' 컴파일러 플래그와 '강제적 퇴출'
CERN 엔지니어들이 이번 이주를 결정짓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술적 과도기에서 발생한 CPU 호환성 문제였다. 이른바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 마지막 짚푸라기(The straw that broke the camel's back)"이 된 사건이다.
레드햇은 RHEL 9 및 CentOS Stream 9부터 기본 최적화 컴파일러 플래그로 -march=x86-64-v2를 도입했다. 이는 최신 CPU의 성능을 최적화하는 대신, SSE4.2 등 비교적 최신 명령어가 없는 이전 세대 CPU 지원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조치였다.
문제는 지하 수십 미터 터널에 설치된 가속기 제어용 산업용 PC 중 다수가 10~15년 이상 안정적으로 가동되고 있던 레거시 시스템이라는 점이었다. CERN 측 분석에 따르면, RHEL 9 계열로 올라갈 경우 전체 가속기 제어 컴퓨터의 약 47%를 구동할 수 없게 되는 기가막힌 상황이 발생했다.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기 위해 가동에 문제없는 수천 대의 고가 정밀 제어 장비를 통째로 교체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예산 낭비이자 운용 리스크였다. CERN 엔지니어들은 이를 기업의 '강제된 노후화(Forced Obsolescence)' 정책으로 규정했다.
데비안(Debian) 선택의 이유와 향후 로드맵
CERN이 대안으로 선택한 데비안 13(코드명: Trixie)은 특정 기업의 상업적 정책에 휘둘리지 않는 자율적 커뮤니티 OS다. 데비안은 이전 세대 x86-64 하드웨어(x86-64-v1)에 대한 구동 지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어, 기존 가속기 제어장비를 교체 없이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CERN은 2026년 4분기까지 약 2,200대의 가속기 전면부(Front-end) 제어 시스템을 데비안 13 체제로 완수할 계획이다. 장기적인 기술 지원과 시스템 안정화를 위해 오픈소스 전문 기업 '프릭시안(Freexian)'과 협력하여 데비안 연장 장기 지원(ELTS)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2033년 이후까지 지원을 확보했다.
다만, CERN의 모든 컴퓨팅이 데비안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번 전환은 지하 가속기 실시간 제어 및 특수 하드웨어 연결 장비에 한정되며, 대규모 데이터 처리 센터나 일반 연구용 서버 컴퓨팅 환경에서는 기존의 RHEL 및 AlmaLinux 체제를 지속 유지할 방침이다.
[시사점] 오픈소스 생태계와 대형 연구기관에 던진 경종
CERN의 이번 결정은 빅테크 기업 주도의 오픈소스 정책 변경이 거대 과학 기술 인프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즉, 상용 리눅스 기업들이 수익성과 기술 최적화를 이유로 레거시 하드웨어를 발 빠르게 끊어내는 반면, 순수 커뮤니티 기반의 데비안은 높은 범용성과 유연성으로 대안이 되었다. 향후 기업 주도 OS의 급작스러운 정책 변화에 부담을 느낀 다른 대형 연구기관이나 산업체에도 데비안 전환 바람이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들풀 기자 it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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