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으로 살아가기…”자기사랑과 자기철학”

“질문은 그만하시고 그냥 답을 말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얼마 전 한 기업의 임원들과 교육을 하는 중에 벌어진 일이다. 내가 계속해서 질문하자 한 임원이 한 말이다. 생각하기보다는 실행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항변일 것이다. 

우리는 왜 이런 일에 익숙할까? 그리고 이런 경험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직장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느낀 오늘날 우리 시대 직장인의 비극은, 자기 일이 아니라 누군가가 시킨 일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렇게 반문한다.  

“제가 거기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
“좀 더 명확히 지시해주시죠.”
“제 삶을 희생시키고 싶지는 않아요.”

주체적으로 살아갈 내적 힘이 사라지면 직장은 하나의 감옥이 된다. 일은 고역이 되고 주말, 휴가, 휴일만이 희망이 된다. 오늘날 워라밸, 소확행, YOLO는 직장에 대한 심리적 탈주가 시작되었다는 증거다. 일과 삶의 주체성이 사라진 것이다. 

누군가는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사회적으로 승인된 방식, 혹은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살아간다. 특별한 자각이 없다면 우리는 지배 권력에 훈육되기 때문이다. 주체자는 내가 아니라 익명의 다른 사람이 된다. 그러면 상황의 피해자는 언제나 나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제 탓이 아니에요.”
“저 사람이 바뀌어야죠.”  

어떻게 자기주도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을 삶의 주인(owner)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회사가, 직장이 나를 주인으로 대우하기 때문이 아니다.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일이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자신을 주인으로 세우는 방안은 두 가지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과 같은 과도한 압력 속에서 살아야 하는 모든 현대인들의 핵심 과제다. 

첫 번째는 자기사랑(self-compassion)이고, 두 번째는 자기철학(value & philosophy)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자기사랑이 아니라 자기혐오를, 그리고 자기철학이 아니라 남의 철학을 차용해 왔다. 매순간 지위, 신분, 부, 역량, 성과로 평가받는 사람들은 열등감과 무력감 또는 자만심과 우월감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열등감과 무력감은 조직에 대한 의존을, 우월감과 자만심은 타인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했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약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고유한 존재임을, ▲가능성을 향해 열려있는 존재임을, ▲단 한 번뿐인 삶을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상처와 고통마저도 사랑할 수 있는, 그래서 본래의 가능성을 가진 경이로운 존재임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고, 이를 해결하려는 충동이 생겨난다. 거기가 주체의 진원지다. 

하지만 자기혐오는 맹목적인 성취나 의존 또는 착취의 관계,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자기 불안과 두려움만을 키운다. 

자기주도성의 두 번째 경로는 자기 철학이다. 자기 철학은 자신의 고유한 생각에서 온다. 고유한 생각은 남이 주입한 것이나 남에게서 차용한 것과는 대척점에 있다. 

그것은 구체적 경험으로부터 자기 내러티브(self-narrative)를 축적하는 가운데 구축된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주의를 집중하고 그곳에서 쉼 없이 의미를 길어 올리는 것이다, 그래야 생각이 보태어지고 생각이 자란다. 

생각이 깊어지면 깊은 생각의 저수지가 생긴다. 생각은 예리해지고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의 고유한 세계가 만들어진다. 그것이 결의와 선택의 힘을 준다. 우리들의 직장은 언제부턴가 생각할 시간을 뺏어갔다. 생각 없이 빠르게 행동하는 것을 미덕처럼 떠받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종을 길들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주도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 사랑과 자기 철학을 가지면 도전적으로 세상에 맞설 수 있다. 그리고 자기 철학을 검증할 수 있다. 

말로, 글로, 작품으로, 활동으로, 프로젝트로, 삶 그 자체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리고 온갖 피드백을 통해 자신의 삶을 검증해가는 동안, 생각은 믿음이 되고 신념이 되며, 삶이 된다. 그를 통해서 삶의 의미와 생기를 얻는다.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삶 전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목적(사명)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목적을 향한 책임을 감당할 때, 거기에 비로소 주체가 있다. 

온갖 비책으로 난관을 돌파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구성원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직장, 구성원의 생각을 키우는 직장이 진짜 희망이다. 

이창준 구루피플스(주)아그막 대표, 이화여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