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페로몬 효과 있을까?…없다! 판명

"인간의 페로몬을 피부에 한 번만 뿌려 보세요. 데이트에 성공할 것을 보장합니다." 당신은 이와 같은 광고 카피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화학물질을 분비하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한동안 갑론을박을 계속해 왔다. 심지어 전문가들조차 '인간 페로몬이 실제로 존재하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팽팽히 갈라져 대립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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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age Credit: pixabay

<참고> 내 남자의 향기 
일본 도쿄 대학교의 야마자키 쿠니오는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서로 다른 MHC(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 주조직적합복합체)를 가진 쥐들끼리 짝짓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럼 인간의 경우에는 어떨까? 우리 또한 무의식적으로 배우자감의 적합유전자를 평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암암리에 체취를 풍김으로써 우리의 유전적 구성(genetic make-up)을 주변사람들에게 과시하는 것은 아닐까? 일부러 돈 많은 행세를 하거나 (공작처럼) 멋진 깃털을 자랑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HLA(human leucocyte antigen, 조직 적합성 항원) 연구의 개척자 중의 한 명인 욘 판 로트는 1980년대에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왜냐하면 냄새는 본질적으로 측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1994년 6월, 베데킨트는 – 오늘날 도발적인 것으로 악명높은 실험을 통해 – 해묵은 난제에 도전했다. 

그는 먼저 49명의 여학생과 44명의 남학생을 모집하여, 어떤 적합유전자를 갖고 있는지 조사했다(특별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학생들은 생물학 또는 심리학을, 남학생들은 화학, 체육, 또는 지리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종을 이루었다). 다음으로, 여학생들에게 비강분무제를 지급하여 14일 동안 후각을 잘 관리하게 하면서, 패트릭 쥐스킨트의 판타지 소설 『향수』를 읽혀 후각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남학생들에게는 이틀 동안 순면 티셔츠를 입게 하고, 체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성행위, 흡연, 음주, 탈취제 사용을 금했으며, 심지어 냄새 나는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했다. 

이틀 후, 남학생들이 입었던 티셔츠를 수거하여 삼각형 구멍이 뚫린 판지상자에 넣었다. 그리고 여학생들에게 1인당 6개의 티셔츠 냄새를 맡게 한 다음, ‘강렬함’, ‘기분 좋음’, ‘섹시함’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각각 0점에서 10까지의 점수로 평가하게 했다. 

연구진은 여학생들이 티셔츠에 매긴 점수를 근거로 하여, 티셔츠에 대한 선호도와 적합유전자의 상호일치/불일치 정도를 비교분석했다. 연구진이 비교대상으로 삼은 적합유전자는 HLA-A, -B, 그리고 classⅡ HLA 유전자 중 하나였다(이 세 가지 적합유전자는 조직이식의 성패를 가늠하는 유전자여서, 검사도구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비교분석 결과, 여학생들은 자신과 다른 적합유전자를 가진 남학생의 체취를 ‘기분좋다’거나 ‘섹시하다’고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체취의 ‘강렬함’은 적합유전자의 일치/불일치와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상의 분석결과를 종합하여, 연구진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우리와 다른 적합유전자를 가진 성적 파트너를 선호한다.” 

그런데 베데킨트의 연구에는 극적인 반전이 도사리고 있었다. 피임약을 복용하는 여학생들의 취향은 그렇지 않은 여학생들의 취향과 정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즉, 피임약을 복용하는 여학생들은 자신과 비슷한 적합유전자를 가진 남학생의 체취를 선호했다.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베데킨트는 이렇게 해석했다. “여성이 임신하면 성적 파트너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아 취향이 바뀐다. 그래서 자신과 비슷한 적합유전자를 가진 가족의 체취를 더 좋아하게 된다. 그런데 피임약은 여성을 임신과 비슷한 상태로 만들어주므로, 피임약을 복용한 여성은 자신과 유사한 적합유전자를 가진 남성의 체취를 선호하게 된다.” 

베데킨트의 두 번째 발견은 우리에게 한 가지 시사점을 준다. 그것은 “여성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간에 피임약을 복용한다면, 선택 메커니즘이 교란되어 올바른 배우자를 고를 수 없다”는 것이다. 남성이 향수나 탈취제를 사용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 출처: 대니얼 데이비스, 『나만의 유전자』, 생각의 힘 (2016)


마침내 새로 발표된 논문이 "인간의 페로몬(Pheromone)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인간으로 하여금 서로에게 이끌리게 한다'고 주장해온 두 개의 페로몬이 이성(異性)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힘으로써, 인간 페로몬에 관한 아이디어에 찬물을 끼얹었다.

영국왕립오픈사이언스’(Royal Society Open Science) 저널 3월 7일 호에 실린 논문에서,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대학 (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 진화생물학 센터 연구진은 이성애 참가자들을 인간의 페로몬으로 간주되어온 두 가지 스테로이드에 노출시키고, 이성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며, 호감도를 평가하라고 요구했다. 두 개의 스테로이드 중 하나는 안드로스타디에논(AND: androstadienone)이고, 다른 하나는 에스트라테트라에놀(EST: estratetraenol)이었는데, 전자는 남성의 땀과 정액에서, 후자는 여성의 소변에서 검출되는 것이다. 연구진은 "여성에게 뿌려진 AND와 남성에게 뿌려진 EST가 참가자들로 하여금 이성의 얼굴을 좀 더 후하게 평가하게 할 것"이라고 추론했다.

연구진은 또한, 참가자들에게 남성과 여성의 이미지를 합성하여 만든 중성적인 얼굴(성별이 모호한 얼굴)을 보여줬다. 연구진은 "만약 AND와 EST가 페로몬이라면, AND에 노출된 여성 참가자는 중성적인 얼굴을 남성으로 인식할 것이며, EST에 남성 참가자들은 중성적인 얼굴을 여성으로 인식할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러나 연구진의 추론은 빗나갔다. 연구진은 "AND와 EST는 참가자의 행동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AND와 EST에 붙었던 '잠정적인 인간 호르몬'이라는 딱지를 떼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 연구의 주요저자인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대학 리 시몬스(Leigh Simmons) 박사(진화생물학)는 "나 자신도 AND와 EST는 추구할 가치가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시몬스는 '인간 페로몬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 연구자 진영에 속해 있었지만, 지금껏 확인된 인간 페로몬은 하나도 없었다. 그에 의하면, AND와 EST는 '과학자들의 파일서랍 딜레마(file drawer problem) 때문에 어이없이 부각된 케이스'라고 한다. 파일서랍 딜레마란 출판편향(publication bias)이라고도 하는데, 부정적 결과가 나온 데이터를 출판하지 않고 실험실의 파일 캐비닛 속에 처박아두는 경향을 말한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페로몬 연구자 트리스탐 와이엇 박사는 "최근 '부정적 결과를 출판하라'는 압력이 거세지다 보니, 오랫동안 받아들여졌던 견해를 뒤집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발표된다. AND와 EST는 임금님의 새 옷(Emperor’s New Clothes: 실제는 존재하지 않는 데, 본인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을 말함)을 연상케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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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국 과학아카데미의 웬 조우 박사(행동심리학)는 AND와 EST가 인간의 호르몬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2014년 발표한 논문에서 "AND와 EST가 참가자들의 성별판단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한 바 있는데, 사이언스(Science)에 보낸 이메일에서 "이번 연구의 설계와 수행이 엄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연구진이 사용한 중성적 얼굴이 '진정한 중성'이 아니었으며, 참가자의 얼굴에 '스테로이드에 적신 면봉'을 부착하기 위해 사용한 테이프가 스테로이드의 냄새를 가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AND와 EST가 페로몬이라는 주장을 제기해 평판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으며, '함께 사는 여성들은 월경주기가 똑같아진다'고 주장하여 거센 논란을 일으켰던 시카고 대학교의 마서 매클린톡 박사(행동신경과학)는, 이번 연구결과에 대해 "'AND와 EST는 파트너를 이끄는 신비로운 능력을 갖고 있다'는 단순한 견해를 부정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녀는 "나는 아직도 AND와 EST가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예컨대 극미량의 AND도 뇌의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가장 최근에 발표한 논문에서, "다른 사람의 스웨터에서 나온 AND를 흡입하게 하면, 누군가의 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번 연구결과의 확고함을 믿는 와이엇은 "연구자들은 차제에 인간의 페로몬을 연구하는 방법을 재평가해야 한다"라며, "성(性)과 매력에 대한 연구들은 복잡한 영역을 탐구하고 있지만, 인간의 성적 행동은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성인보다 아기들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이 좋겠다. 아기들은 냄새와 관련된 교란요인이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기들은 모든 어머니의 젖꽃판샘 분비물(areola gland secretion)에서 나오는 페로몬 유사물질에 반응해, 혀를 내밀거나 젖을 빠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에도 논란의 여지는 충분하다. 아직도 많은 과학자들은 AND와 EST 도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페로몬이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항상 왜라는 질문과 의심, 그리고 상상을 통해 기존 이론을 검증하거나 재발견, 또는 뒤집기 때문이다.

위 글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 등재된 양병찬 번역가의 글을 옮겨 싣는다. 양병찬 약사/과학 전문 번역가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을 공부했다. 현재 약국을 운영하며 의학, 약학, 생명과학 분야 등 과학 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한 매주 포스텍(POSTECH)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 네이처(Nature)와 사이언스(Science)에 실리는 특집기사 중 엄선해 번역 소개한다. 최근 번역 출간한 책 '핀치의 부리'(2017.03.08.), '자연의 발명'(2016.7.11.)을 비롯해 ‘나만의 유전자’, ‘영화는 우리를 어떻게 속이나’, ‘매혹하는 식물의 뇌’, ‘곤충 연대기’,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 남는다’, '센스 앤 넌센스', ‘비처방약품치료학’, ‘커뮤너티파마시’, ‘리더에게 결정은 운명이다’, ‘잇 앤 런’, ‘아트 오브 메이킹 머니’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을 번역 출간했다.

[김들풀 기자  itnews@itnew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