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 ‘4차산업위’인가?…”52시간제와 생산성”

■ 한국 IT기업 경영인들의 혁신에 대한 관점
 

최근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은 "주 52시간제, 국가가 일할 권리 뺏고 있다”라며 심지어 “실리콘밸리에 주 52시간을 이유로 출퇴근을 확인하는 회사는 없다. 해고와 이직은 일상”이라고 52시간제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내놨다.

그러나, 실리콘밸리 등 글로벌기업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52시간 이상 일할 권리가 아닌 짧은 시간이라도 이루어낸 성과에 집중한다는 것을 이야기 했어야 한다.

 
▲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지난 25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4차 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제공]
한국 IT기업에서 일해 본 사람이라면 많은 개발자 및 프로젝트 관리자들이 번아웃(burnout)되는 현상을 보았을 것이다. 결국은 지쳐서 개발자들이 떠나거나, 회사에 대한 신뢰가 없기에 소스 코드 조차도 남겨놓지 않고 회사를 떠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무엇을 이야기는 것일까? 52시간이 부족해서 그럴까? 아니면 보상이 부족해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기술인들의 윤리 문제인가?
 
실리콘밸리의 해고와 이직이 자유롭다는 이야기는 기업주와 개발자가 동등하게 협상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즉 실력 있는 개발자를 존중하는 문화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개발자와 사용자가 공정한 협상을 하고 제값을 받고 일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는 해고도 이직도 불편하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기술자와 사용자는 수직적 종속관계다. 이런 이유로 한국 사회에서 많은 개발자 및 운용자들은 여러 업무에 많은 시간 투입되어 번아웃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IT 경영인들은 여전히 개발자들의 노동시간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투입 시간이 개발 원가이고 다른 말로는 특별한 혁신이 없는 일을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 한국 노동생산성
 
한국 사회는 OECD 국가 중 노동생산성이 낮은 국가 중 하나다. OECD 기준으로 2016년 우리나라의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이고 OECD 회원국 평균인 1,764시간이다. 즉 한국인은 1년을 기준으로  305시간(매일 최소 1시간 이상) 더 일하고 있다는 뜻으로 시간 대비 효율이 낮다.
 
낮은 노동생산성에도 오랜 시간 근무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려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노동집약적 산업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70년대 한국 사회는 좁은 봉제공장에서 많은 여직공을 잠 안 자는 약을 먹이면서까지 밤새워 일을 하게 해서 봉제제품을 생산하고 낮은 가격으로 수출 경쟁에서 이겼다. 즉 최소 공간에 최소 인원으로(다만 오랜 노동시간을 투입) 품질 대신 낮은 가격으로 승부했던 시절이었다.
 
한국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가격 경쟁 통해 수익을 냈고, 성공한 기업이 되었다. 문제는 이런 한국의 기업문화는 모든 산업분야에 이르기까지 전이됐다는 점이다.
 
특히, 본사에서 승진하기 위해 야망이 있는 사람들은 늦게까지 일하는 모습은 임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낮 시간에는 놀며 사내정치를 하다가 퇴근 이후에 남아서 보고서 작성 등을 하는 웃지못할 상황도 연출했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승진을 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노동집약 산업시대까지는 유효할 수 있지만 산업이 복잡해지면서 기술과 서비스가 융복합되어야 하는 시대에는 맞지 않다. 즉 시간 투입만이 아닌 노동 생산성이란 지표는 이미 정보산업시대부터 OECD에서 국가별 평가지표로 등장하게 됐다.
 
한국 노동 연구원 연구결과에 따르면, 투입된 근로시간이 생산성을 올리는 것이 아니고 주 44시간 이하 근무가 가장 높은 효율이 나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 근로 시간대별 부가가치를 보면, 총 근로시간이 40시간 이하인 사업체(2009년 266억 원에서 2011년 169억원, 2013년 159억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며, 2009년에는 총 근로 시간이 44시간 이하(40시간 초과)인 사업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지만, 2011년과 2013년에는 총 근로시간이 48시간 이하(44시간 초과)인 사업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인다. 총 근로 시간대별 1인당 부가가치나 유효 노동당 부가가치를 보면, 총 근로시간이 44시간 이하(40시 간 초과)인 사업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며, 총 근로시간이 이보다 늘어날수록 전반적으로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 근로시간과 노동생산성: 한국 노동연구원 성지미 
▲ 4차 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 자료 표지 [4차산업혁명위원회 제공]
■ 4차산업혁명 시대 혁신을 위한 노동
 
앞서 다뤘지만, 여전히 한국 IT 기업은 노동 투입 시간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우리는 어떤 개발할 때 맨먼스(Man Month)라는 방식으로 개발비용을 산정한다. 물론 일반적인 IT 개발비용 책정 방식이지만,  소프트웨어의 가치보다는 사람들의 투입 시간 중심으로 단가를 산정한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런 노동집약적 한국 IT분야 인식은 4차산업위원회 위원장뿐만 아니라 대부분 IT 경영인들 역시 같은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특히 노동생산성을 최고로 높이기 위해서는 52시간보다 낮은 44시간이 적정하다는 연구 결과처럼 52시간 이상 일할 권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효율이 가장 높은 시간만큼 일하는 것을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52시간 근무제부터 정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자유 출퇴근을 보장하는 곳들이 많다. 개발자 중심으로 기본적인 임금은 보장하고 점심시간을 빼면 일주일 평균 근무 시간은 30~35시간이다. 그나마 회사 근무는 월~목요일까지이고 금요일은 집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글로벌 기업 대부분은 회사에서 근무시간를 크게 규정짓지 않는 곳들이 많다.
 
업무적으로 만났던 글로벌 기업 직원의 경우 싱가포르 사무실에는 주 1회 회의를 위해 방문하고, 나머지 기간은 집에서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곳들도 많다. 대신 야간에도 세계 곳곳과 메일로 대응하여야 하는 경우들이 있어 생활과 업무를 병행하는 부분이 다소 불편하지만, 그런 방식의 노동이 자유롭고 좋다고들 한다.
 
문제는 회사 출근이 중요한 것이 아닌 결과와 효율인 것이다. 한국사회의 경영자들은 안타깝게도 본질적인 기업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에 대한 고민보다는 일할 권리라는 이상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따라서 52시간제 도입은 스타트업 등은 예외로 해야 한다는 선택적 시간제는 혁신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자칫하면 스타트업이라는 구실로 열정페이를 남발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문제는 혁신을 빙자한 노동 생산성을 낮추고 인건비 낮추기 위한 시간 투입을 고집하는 것은 4차산업혁명을 70년대 봉제 공장식으로 경영을 하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내 경우만 보더라도 52시간으로 근무를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하루가 무척 밀도 있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시간 내에 업무를 마치기 위해 회의실 예약 시간도 제한했을 뿐만 아니라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하기 때문에 매우 유효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처럼 단적인 예만 보더라도 퇴근시간이라는 마감효과가 여러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따라서 업무효율이 높아지고 일과 생활 만족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의 커뮤니티를 통한 네트워킹은 스타트업 창업뿐 아니라 실리콘밸리 생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커뮤니티 생태계가 형성되려면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메이커스 문화 및 커뮤니티 형성이 어려웠던 이유는 노동시간과 연관이 많다. 많은 이들이 취미를 갖기 어려울 정도로 바쁘기 때문에 커뮤니티 형성도 안될 뿐만 아니라 가기계발을 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
 
구글의 자율 출퇴근제도나 20%의 개인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시간 제도는 자유로운 커뮤니티 속에서 창의적 아이디어가 형성되고 그 혁신은 기업혁신으로 돌아온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 및 미국 등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주도하는 국가는 주당 평균 노동 시간이 40시간 미만이다. 장시간 노동으로 생산량을 높이는 방식이 아닌 본질적인 혁신을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이제 한국 경영자들은 ‘4차산업혁명 시대’라는 헛구호가 아닌 본질적 혁신을 위한 생태계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즉, 70~80년대 방식의 노동시간 투입방식으로는 절대 혁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시점이다.

[금빛나무]
국내 기업 기술자입니다. 급격히 변화되는 세상을 따뜻한 공존 사회로 가기 위한 기술철학과 시대정신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